누구나 삶에 있어서 끔찍한 부분이 있지만 누군가는 더더욱 끔찍한 부분이 많기 마련이다. 말을 못한다거나 집밖으로 나오지 못할정도로 사람이 무섭거나 가족간의 사이가 좆소기업의 텃세보다 안좋다거나. 삶에서 버릴부분이 많으면 받아들일 부분도 많다. 슬프게도 말이다.
나라고 그렇게 예쁜 색으로 칠해줄수는 없겠지만 칙칙한 회색으로나마 실금을 메워줄수는 있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규칙과 목표가 생기고 그걸 따를 생각이 있다면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니까. 물론 시작은 느릿느릿 하게 수조에서 수조로 관상어를 옮기듯 느려터진 적응과정이 필요할 것이고 어쩌면 지루할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모든걸 오픈할수는 없으니까.
서로 얼굴을 맞대고 얘기를 하고 정보를 교환하며 톱니바퀴가 맞물릴거라는 생각이 들면 그때부터 목표와 규칙을 만들기 위해 명령을 해줘야하는 거다. 밥을 거르는거 같으면 식사보고를 시킨다던지. 못먹을거 같다고 하면 어쩔수 없지만 내가 시간이 나면 찾아가서 옆에서 얘기를 들어주면서 안정시켜서 뇌가 제대로 굴러갈수 있게 해준다던지.
삶의 끔찍한 부분에서 멀어질수록 주인에게 가까워지고 가까워지면 자신의 성향에도 솔직해질수 있는법이다. 삶에서 괴로움은 없어질수 없는 존재지만, 적어도 그걸 원하는 형태로 받아들일수는 있다. 시작하면 나도 가혹하게 대할것이고 그걸 사랑으로 받아들여도 즐겁지 않을 때도 많을것이다. 새로운 억압속에 갇혀살게 되는것이다.
그럼에도 서로 같은 침대에 어께를 기대고 앉아 서로 아무말없이 체온을 느끼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도 행복감을 느낀다면 그게 사랑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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